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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
[프리미엄조선] 세상사 인연이 뭐 별건가요? 일년에 한두 번씩 '밥이나' 먹으면 되는 것을…
     2014.11.18 0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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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교수 명랑笑說] 세상사 인연이 뭐 별건가요? 일년에 한두 번씩 '밥이나' 먹으면 되는 것을…

오래갈 줄 알았는데 소원해지고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벗이 되더라 했다. 지나고 보니 세상이 사람이고 사람이 세상이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들이 모여 세상이 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맺어지는 것을 인연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는 인연은 두 가지다. 재미있는 인연과 재미없는 인연. 재미없는 인연에는 학창 시절의 은사들, 돈 떼먹고 달아난 동창, 상처와 모멸감만 안겨 주고 떠난 여자 등이 있겠다. 재미없는 인연에도 효용은 있다. 좋은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수시로 각인시켜준다. 재미있는 인연 중 가장 재미있는 게 별 이유 없이 밋밋하게 오래가는 인연이다. 한 신문사 기자 A씨가 내게는 그렇다.


이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이십 년 전 영화 마케팅에 종사할 때다. 마케팅이라고 하니 뭐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별거 아니었다. 그저 신문 영화 면에 영화 기사 실어달라고 떼쓰는 게 일이었다. 보도 자료를 보냈더니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거 누가 썼느냐고 묻더니 신문사로 좀 오란다. 영화에 대해 추가로 물어볼 게 있나 보다 신이 나 달려갔다. 아니었다.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보도 자료를 잘 써서 누군지 한번 보고 싶어 불렀다고 했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란다. 사람이 사람을 그런 이유로 호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당연히 영화 기사는 안 나왔다).

그가 영화 담당이었던 2년 동안, 조르고 읍소하였으나 내가 맡은 작품은 단 한 번도 영화 면에 실리지 못했다. 솔직히 A급 영화는 아니었지만 다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혹시 인간적인 친분이 허약하여 그런가 밥 한번 먹자고 했지만 그것조차 내리 거절이었다. 기사 쓰고 사람 만나는 기준은 있었겠지만 참 모진 사람이다. 아, 딱 한 번 나온 적이 있다. 영화 말고 '사람들' 코너에 영화 말고 내가. 모 스포츠신문에서 신춘문학상이란 걸 받은 직후였는데 프로필과 사진을 보내라 했다. 다음 날 신문 인물 면에 이렇게 나왔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 현장 직원, 나이트클럽 악사 등을 전전하다 영화계에 입문했던 이색 경력의 영화 기획자 모모씨가 신춘문예에 어쩌고저쩌고'. 아니 이 사람이!!! 졸지에 내 인생은 '전전'이 되었다. 며칠 후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음지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시는 차원에서 출연하지 않겠냐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음지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정중히 거절했다.

그가 연극 담당으로 옮기면서 우리 관계는 그렇게 소득 없이 끝났다. 그런데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전화를 해대다가 담당 아니라고 똑 끊으려니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했더니 대뜸 밥이나 한번 먹잔다. 허허, 이렇게 쉬운 것을. 그 뒤로 십수 년째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밥이나'를 먹으며 영화 이야기를 하고 연극 이야기를 하고 여자 이야기를 하고 세상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왜 만나고 있는 것일까를 잊은 지는 꽤 오래다. 메뉴는 거의 같다. "봄도 됐는데 보신탕이나 한 그릇 어때?", "여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보신탕이…", "날씨가 선선해지니까 보신탕 생각이 나네.", "눈 온다. 보신탕?"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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