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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스케치...
추억팔이 #2
     2020.12.01 13: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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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일찍 자야겠다 싶었는데 카톡이 왔다. 자주 연락은 안하지만 만나면 꽤 재미난 친구였다. 그 친구를 만나면 항상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같이 나왔는데 여자친구의 푼수도 재미있었다. 그 친구는 거의 여자친구와 놀다가 가끔 초대손님을 부르곤 했는데, 오늘이 내차례였나보다.

약간의 갈등을 하다가 나가기로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곳이기도 했고 오랜만의 연락을 거절하기도 내키지 않았다. 늦게까지 술을 먹게 되면 숙취 가득한 몸으로 알람소리에 맞춰 칼같이 일어나야 될 내일이 살짝 두려웠지만, 그냥 오늘을 즐기기로 했다.

알겠어 갈게 근데 나 오늘 일찍 들어가야해

평소엔 얼마나 늦게까지 놀았다고 밑밥까는 답메세지를 남기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집에서 10분거리였다. 평소와는 달리 세명이 앉아있었다. 다소 당황했다. 친구와 친구여친 그리고 한명이 더 있었는데, 일단 여성이었음에 다소 안도했다. 우리나라에서 남자간의 초면은 다소 귀찮은면이 있다. 일단 나이를 까야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호칭을 정리할 시간이 다가온다. 흡연자라도 만나면 면상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술이라도 마시면 술잔을 한손으로 받니 어쩌니로 합의를 봐야한다. 술은 마셔야 하지만 취하면 안된다는 압박도 있다. 이른바 서열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뭐 어쨌든 뭔가가 구구절절 많은 초면의 남자에 비해 초면의 여자라면, 예의의 범주가 달라지기는 해도, 긴장해야 하는 각도가 달라진다. 일단 외모를 살폈다. 벙거지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눈이 겨우 보일정도 였고 뱃살이 엄청 나와있었다. 본능적으로 긴장이 풀어졌다. 내가 오늘, 너를 위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을것 같아-.

여자친구의 친구라고 했다. 오가는말을 들어보니 오랜 베프인듯 했다. 술잔이 오갔고, 내일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벙거지모자를 쓴 아이의 주량이 상당하다는걸 느꼈다. 나와 친구와 친구여친은 점점 취해가는데 그아이는 멀쩡해보였다. 2차쯤에서 적당히 마시고 자리를 끝내려는 친구의 의도에 아쉬워 하는듯한 표정을 보긴 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걸어가면 돼. 걸어서 10분이면 가.

그렇게 그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친구가 그아이가 호출한 택시에 나를 밀어넣었다.

같은방향인데 가다가 떨궈달라고해

걸어서 10분이니 택시로는 1-2분의 짧은 시간이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빨리 왔네요. 오늘 즐거웠고 다음에 또 봬요. 정도의 멘트를 날려주려던 찰나-.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잔 더 하실래요?

어라-. 아니 이봐-.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잘 모르는사이야- 라는 고민과 갈등도 잠시, 나를 포함한 대다수 남자의 대답은 비슷했을거라 생각한다. 그 순간부터 그아이의 뱃살은 머리속에서 삭제시켜야 했다.

그래요.

골뱅이를 파는 술집에 도착했다. 골뱅이도 맛있었지만 소면이 탐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무념상태였던 1,2차에서 와는 달리 이제부터라도 젓가락에 가득걸린 소면을 후루룩 입에 넣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었다. 이제는 목적의식이 생겼잖니.

처음 만난 사이치곤 술도 많이 마신대다 솔직한 대화도 오갔다.

내 고추를 네 엉덩이에 비비고 싶어-.

이병헌 감독의 영화 '스물'에 나오는 대사다. 절대 내가 내뱉은 말은 아니다. 저정도 수위는 술인지 떡인지 모를정도로 취한다고 해도 내입에서 나올 대사는 아니다. 나는 소심하고 찌질하니까.

설레여요. 혹시 내일 우리가 함께 일어날수도 있잖아요.

지금 기분이 어떻냐는 말에 취기를 빌어 최대한 용감한 얘기를 했다.

.

김우빈은 잘생겨서 좋겠다. 내삶은 그다지 영화같지 않다.

남자들은 다 똑같군요.

몇마디의 대화를 더 나누다가 그아이는 계산을 하러 갔다. 내가 영화를 찍는다면 그 다음장면은 각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장면일거다. 나는 현실적인 영화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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