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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다는데…/ 김선주
쉰이 넘으면 ‘늙은잇과‘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쉰이 막 넘었을 때였다. 잘
아는 30대 여성작가의 연애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작가가 문예잡지의 지상
좌담회에서 자신의 작품이 50대가 넘은 노인들한테서 공감을 얻는 것을 보고 놀랐
다며 ‘50대가 넘은 노인’을 여러번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뿔사 쉰이 넘어서 연애소
설에 감동을 하면 주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뒤 그와 만나면 어쩐지
불편했던 것은 너가 나를 노인 취급했지 했던 섭섭함이 남았던 까닭인 것 같다. 나
이는 상대적인 것이겠만 쉰몇살 처지에서는 적어도 일흔은 넘어야 노인 취급을 하
게 된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70대 노부부가 실제로 출연한 영화로, 노인들의 사랑과 생
활을 가감없이 그린 다큐멘터리성 극영화다. 이 영화가 영화등급위원회에서 격렬
한 토론 끝에 ‘제한상영가‘로 판정을 받았다. 7분 동안 묘사된 노인들의 방사 장면
이 노골적이어서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한 상영이란 제한 상영관이
따로 없는 현실에서는 상영불가 판정을 뜻한다. 전주영화제 출품작으로 칸 영화제
에 초청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방송사 피디 출신의 박진표 감독
이 만들었다. 영화를 미리 보았던 영화계와 영화 담당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영
화의 상영불가 판정에 반발하고 있다. 허문영 시네21 편집장은 <죽어도 좋아>가
포르노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포르노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영화라며 올해 한국
영화 가운데 <집으로 …>와 함께 가장 덜 자극적인 영화라고 평했다. 박찬욱 감독
은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라고 했다. 그는 이 영화를 보다가 미친듯이 아내를 불러
같이 보았으며, 처음에는 데굴데굴 구르며 웃다가 마지막에는 아내와 부둥켜 앉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되었을 때 젊은 영화기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노인들의 재발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삭막하고 건조한 존재였던, 그래서
노인들의 성생활이라 해 봤자 서로 돌아앉아 등이나 긁어주는 정도로 알았던 그들
의 성생활이 의외로 자신들과 다름없다는 데 처음에는 놀라고, 나중에는 처절할 정
도로 슬펐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머지 않
아 65살 이상의 인구가 전체인구의 20%가 된다. 이런 시점에 노인문제에 대한, 그
들의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나이의 고하간에 언젠가는 그
대열에 끼게 될 운명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늙음은 그 자체가 소외고 장애다. 그들에겐 성별의 구별이 없다. 그냥 노인이다. 특
히 우리 사회는 노인들을 받들고 대접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할 뿐 그들에게도 사랑
과 질투와 갈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한 실버타운에서 70대의 연
인관계였던 한쌍을 부부 입주자들이 풍기문란이라고 욕하며 쫓아냈다는 뉴스는 우
리 사회에서 노인을 보는 인식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정신 분석학적으로 따지면
성은 모든 호기심의 원동력이며 성에 대한 호기심이야 말로 모든 지적 행위의 근원
이다. 노인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이 없으리라고 짐짓 모른 체하는 것은 죽은 사람
취급과 다름없다.
18살 이상이면 당당하게 주민등록번호를 밝히고 세계 각국의 온갖 자극적인 포르
노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죽어도 좋아>가 젊은이들이 서로 부둥켜 앉고 통곡
을 할 수 있는 영화라면, 그리고 세상의 노인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자신들의 생을
깊이 성찰해볼 수 있는 영화라면 반드시 상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심의가 22
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죽어도 좋아>의 영어 제목은 ‘투 영 투 다이’
다. 나는 늙지 않았는데 세상이 나를 늙었다네 하는 한탄은 모든 노인들의 속마음
일 것이다. 육체와 정신이 아직 소진하지 않았는데 누가 죽기에 알맞은 나이를 규
정할 수 있겠는가.
김선주/ 논설위원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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